빌라(연립·다세대주택)에 이어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서도 ‘전세의 월세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마포구와 강북구, 구로구 등에선 새해 들어 월세 거래량이 전세를 웃도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고금리 여파로 ‘전세살이’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상승으로 아파트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세입자들이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광진구도 전월세 역전 ‘눈앞’
4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마포구의 아파트 월세(준월세·준전세 포함) 거래량은 555건이었다. 전세 거래량(319건)의 1.74배 수준이다. 마포구에서 아파트 월세 거래량이 전세를 앞지른 건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이다. 작년 12월만 해도 전세 거래량(488건)이 월세(367건)보다 많았는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예컨대 도화동현대 전용면적 54㎡는 지난달 보증금 1000만원, 월세 200만원에 세입자를 들였다.
강북구의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작년 12월 109건에서 올해 1월 141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세 거래량은 112건에서 85건으로 내리막길을 걸으며 전·월세 거래량이 역전됐다. 구로구에선 지난해 11월부터 월세 우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11월엔 월세와 전세 거래량이 각각 334건, 297건이었다. 지난달엔 월세 323건, 전세 189건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광진구에서도 조만간 월세가 전세를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기준 전세 거래량은 138건, 월세는 131건이다.
임대차 계약을 연장할 때 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타는 사례도 나왔다.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 전용 84㎡는 지난달 기존 보증금 3억6700만원의 순수 전세에서 보증금 1억원, 월세 100만원의 준월세로 갱신 계약이 이뤄졌다. 서울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아파트 전세 거래량(7354건·1월 기준)이 월세(4875건)보다 여전히 많다. 다만 지난해 1월 전세가 월세보다 4000건 가까이 많았던 걸 고려하면 월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세 부담은 4개월째 증가
월세 증가는 대출 규제와 정치적 불확실성 등의 여파로 아파트 매매시장이 위축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집주인 입장에선 작년 4분기부터 아파트 매매가격이 오르지 않아 자본이득을 기대하지 못하게 되자 월세를 놓아 운용수익을 늘리려 할 수 있다”며 “매매가가 하락해 전세가율이 높아지면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세입자도 월세 비중을 높이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1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4.1%로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가 하락 전환하긴 했지만, 이자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인 점도 월세 선호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보증기관의 보증비율을 100%에서 90%로 낮추는 방식으로 전세대출 문턱을 높일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보증금 규모를 줄이고, 월세를 늘리는 형태의 임대차 계약이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 시장은 이미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주택시장 전반에 걸쳐 월세가 ‘뉴 노멀’(새 기준)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세 수요가 늘어나자 가격은 자연스레 뛰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전환율(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은 작년 9월 4.09%(KB부동산 기준)에서 올해 1월 4.14%로 4개월 연속 증가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