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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하나증권빌딩 3층 한마음홀에서 열린 ‘여의도 대교’ 관리처분계획 수립 총회. 이날 조합원들은 97.3%의 찬성률로 관리처분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하반기 이주를 시작하고, 내년 착공에 나설 계획이다. 여의도 첫 재건축 착공 단지가 된다.

하지만 이날 백미는 설계를 맡은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의 창립자 토머스 헤더윅이 참석해 직접 설계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헤더윅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다. 의자, 런던 버스, 올림픽 성화대, 쇼핑 공간, 건물 등 온갖 것을 독창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 신사옥, 뉴욕의 리틀 아일랜드,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힐스 등이 그의 작품이다.
헤더윅은 “한국의 고도 성장기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인간적인 면모보다 경제적인 면에 더 신경 쓰지 않았나 싶다”며 “무미건조하고 반복적이고, 서울 시민 개개인의 성격과 개성을 못 보여주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래서 각 건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정체성과 개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밀도 높은 도시에서 어떻게 인간적인 면모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여의도 대교 재건축 후 모습을 그림으로 제시했다. 우선 고층 건물 4개 동으로 구성해 한강 조망과 일조량을 극대화했다. 4개 건물 중 양옆 2개 동은 낮게 가운데 2개 동은 높게 세워 곡선을 살렸다. 헤더윅은 이를 서울의 산을 이루는 곡선에서 따왔다고 했다. 각 건물 꼭대기도 네모반듯하지 않고 곡선을 살렸다. 이 곡선은 각 건물 중간 부분에서 똑같이 반복해 나타난다. 건물 외벽도 일반적인 아파트와 전혀 다르게 통창과 곡선으로 꾸며진다.
헤더윅은 “런던 시민으로서 산이 많은 서울이 부럽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파리도, 미국 뉴욕도 산이 없는데, 서울은 아름다운 능선들이 어디서든 잘 보인다”며 “아름다운 산은 서울이 가진 보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서울의 건축물은 이런 자연을 무시하고 등을 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연과의 연결 고리와 공감을 살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저층부도 그가 공을 들인 부분이다. 일반적인 아파트는 저층부도 고층부도 네모반듯하다. 1층은 현관으로서만 기능한다. 헤더윅 설계안은 우아한 곡선형 기둥이 건물을 떠받치는 형태로 저층부를 구성했다. 조경도 건물과 별개의 공간으로 나무만 잘 심는 형태가 아니다. 그 안에 곡선형의 각종 커뮤니티 건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일본 아자부다이힐스 저층부와 비슷한 구성이다.
그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정원이 꼭 클 필요는 없고, 꼭 큰 정원이 우리에게 감흥을 주는 것이 아니다”며 “뉴욕 리틀 아일랜드처럼 작은 면적이라도 입체적으로 잘만 설계하면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멋진 정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의도 대교 부지 면적이 작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있다는 뜻을 담았다. 그가 설계한 지상부는 공중 보행로와 지하 선큰 공간 등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꾸며진다. 식당과 카페도 들어선다.

옥상부에는 스카이 커뮤니티 같은 공간이 들어선다. 다만 굉장히 층고가 높아 그 안에 입체적인 공간을 또 만든다. 곡선이 들어가는 건물 중간부에 입주하는 가구에는 테라스가 딸려 바깥 공기를 쐬며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외부인의 출입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조합원의 질문에 그는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갑자기 수천 명의 외부인이 매일 온다면 주민들의 삶이 불편해질 수 있다”며 “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어느 정도의 외부 인원 출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앞으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울타리를 치고 출입 금지 푯말을 붙이는 식은 너무 배타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너무 이상적인데, 실현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질문도 나왔다. 헤더윅은 “지금까지 수행한 모든 프로젝트는 예외 없이 다 도전적이었다”며 “저희가 신생 회사가 아니고 31년 전에 설립된 회사인만큼 경험이 많고, 달성 가능한 비전을 오늘 가지고 나온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공사비랄지 세세한 부분은 아직 다 정해지지 않고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오늘 보여드린 것은 우리 철학이 반영된 우리의 선언문이자,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정희선 조합장은 “헤더윅과 공통적인 생각 중 하나는 우리가 추구하는 럭셔리는 디자인이니 마감재가 아니다”며 “오늘 나온 비전 콘셉트를 최대한 지키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대교 설계에는 국내 설계회사인 ANU도 참여한다. 한국의 법과 제도에 맞게 설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시공은 삼성물산이 맡는다. 단지명은 ‘래미안 와이츠’로 제안했다. 현재 12층, 4개 동, 576가구를 허물고 지하 5층~지상 49층, 4개 동, 912가구로 재건축한다. 부지는 작지만 한경변 입지에 여의나루역(5호선)이 가까워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주변에 여의도초·중·고와 여의도여고 등 학교가 몰려 있는 점도 장점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