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에 세입자가 들어온 지 곧 2년 가까이 됩니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여부를 확인하려고 기다리는 찰나에 연락이 왔더군요. 세입자가 "이번에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가격을 올려 계약해도 되냐"고 묻는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서울 동작구 소재 아파트에 세를 주고 있는 60대 집주인)올해 서울 아파트에서 맺어진 임대차 재계약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비율이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세입자들이 미리 가격을 올려주면서 향후 2년을 더 살기 위해 갱신청구권 사용을 미루는 경우가 있다는 게 현장의 설명입니다.
2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서울에서 계약이 맺어진 전·월세는 모두 6539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갱신계약은 모두 3228건입니다. 전체의 49.36%가 기존의 계약을 갱신한 셈입니다.
갱신계약이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계약은 1902건이었습니다. 전체 갱신계약 3228건 가운데 58.92%를 차지했습니다. 10건 중 6건은 계약을 갱신하면서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세입자의 권리입니다.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 집주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세입자는 기존 계약에서 5%를 더 내고 2년을 추가로 살 수 있습니다. 집주인은 정당한 사유(세입자가 2회분 이상의 월세를 연체했을 때, 집주인이 집에 들어오려고 하는 경우 등)가 없다면 이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세입자가 법으로 보장된 계약갱신청구권을 2년을 거주한 이후 바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더 길게 살고 싶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됩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향후 2년 뒤에는 결국 이사를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임대료를 5% 이상 올리게 되면 현시점에서 다시 계약이 시작되기 때문에 향후 2년 뒤로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미룰 수 있습니다.
세입자들은 당장 임대료 상승 폭이 큰데도 이를 감수하는 모습입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헬리오시티(2018년 입주·9510가구)' 전용면적 84㎡는 지난 16일 보증금 9억5000만원, 월세 120만원에 계약을 갱신했습니다. 기존 계약은 보증금 7억원, 월세 120만원입니다. 보증금이 2억5000만원 더 올랐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반포자이' 전용 84㎡는 지난 14일 보증금 9억원, 월세 250만원에 월세 계약을 다시 맺었습니다. 기존엔 보증금 9억원에 180만원이었습니다. 같은 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지난 16일 보증금 5억원, 월세 490만원에 재계약했습니다. 기존보다 각각 1억원, 40만원 더 오른 수준입니다.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대표는 "세입자들이 먼저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연기하겠다고 나서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있는 사례"라고 전했습니다. 송파구에 가락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요즘 워낙 집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직장이나 아이들 학교 문제 등 거주 중인 곳에서 더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 미리 집주인한테 얘기해 임대료를 더 올리는 대신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뒤로 미루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는 세입자들에게 굳이 집주인에게 이런 요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합니다. 지금 전세나 월세를 올려줘도 2년 뒤에 계약갱신청구권이 보장되지 않아서입니다.
강동구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2년 뒤에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얘기하면 오히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셈이 돼 버린다"며 "순리대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고 2년 뒤 시세에 맞게 가격을 올려주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세입자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필요는 없다는 설명입니다. 현재 서울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는데 세입자가 있으면 집을 매매하기 까다로워져서입니다.
반포동에 있는 D 공인 중개 관계자는 "세입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집을 매매할 수가 없다"며 "집을 매매할 계획이 없다면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2~4년 내 집을 매도할 계획이라면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도록 권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