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형의 밸류업 클래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부동산 주치의, 배준형 수석전문위원입니다.
대한민국 상권의 지형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Z세대의 놀이터이자 글로벌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즐비했던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위상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반면, 과거 붉은 벽돌 공장과 소규모 제조업이 밀집했던 성수동은 이제 대체 불가능한 핵심 상권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가로수길의 쇠락 원인과 성수동의 성공 요인을 살펴보고, 나아가 성수동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구조적 리스크까지 객관적으로 짚어보고자 합니다.
1. 가로수길의 몰락, 젠트리피케이션과 ‘획일화’의 함정
한때 트렌드의 발원지였던 가로수길이 활력을 잃게 된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성공의 후유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권의 급격한 성장 과정에서 지가와 임대료가 빠르게 상승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개성 있는 카페와 편집숍들은 하나둘 밀려났습니다.
그 자리를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글로벌 브랜드가 채우면서 상권은 빠르게 획일화되었습니다. 문제는 치솟은 고정비가 결국 대형 브랜드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잇따른 철수로 가로수길은 ‘임대 문의’ 현수막만 남은 거리로 변모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실질적인 소비 유입보다는 브랜드 노출을 목적으로 한 쇼룸형 매장 중심의 구조였습니다. 이미지 소비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은 점차 발길을 끊었고, 가로수길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물리적 공간만 남은 상권으로 전락했습니다.

2. 성수동의 급부상, ‘경험의 희소성’이 만든 경쟁력
가로수길을 떠난 대중의 시선이 성수동으로 향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성수동은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닌, 공간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이자 문화적 서사로 기능하는 상권으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성수동의 핵심 경쟁력은 콘텐츠의 지속적인 가변성입니다. 1~2주 단위로 교체되는 팝업스토어는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MZ세대에게 성수동을 ‘한 번 가는 곳’이 아닌 ‘계속 확인해야 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과거 공장지대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린 인더스트리얼 감성은 정형화된 가로수길의 미감과 뚜렷이 대비됩니다. 브랜드들은 이 날것의 공간을 캔버스 삼아 철학과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구현했고, 소비자들은 성수동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체험하고 공유하며 희소 가치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3. 성수동의 미래, 자생 생태계와 젠트리피케이션의 갈림길
성수동이 ‘제2의 가로수길’이 될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상권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는 결국 상권의 내적 회복력에 달려 있습니다. 가로수길의 전철에서 확인했듯, 자본 논리에 따라 상권이 획일화되는 순간 수명은 급격히 단축됩니다.
(1) ‘직주락’ 결합이 만든 방어 체력
성수동이 가로수길과 가장 크게 다른 지점은 생산·업무·소비·휴식이 공존하는 ‘직주락(Work·Live·Play)’ 구조입니다. 무신사, 크래프톤, 현대글로비스 등 IT·콘텐츠 기업의 유입은 오피스 타운 기능을 강화하며 유동인구의 변동성을 완화했습니다.
여기에 과거 수제화 거리와 공장지대가 지닌 물리적 정체성은 팝업스토어와 결합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2) 지속 가능성의 임계점, ‘다양성’의 보존
다만 현재 성수동의 임대료 상승 속도는 이미 경계선에 근접했습니다. 대형 자본만 생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독립 매장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상권의 정체성이 ‘익숙한 브랜드 전시장’으로 변하는 순간,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또 다른 대안을 찾아 이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수동의 미래는 부동산 가치 상승 자체가 아니라, 지역 고유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호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동구가 추진해 온 젠트리피케이션 완화 정책처럼, 임대인과 임차인이 공존할 수 있는 심리적·제도적 마지노선 구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제는 ‘어디에 있느냐’보다 ‘그곳에서만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느냐’가 상권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성수동은 가로수길의 전철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기초 체력을 갖춘 상권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번영이 영구적일 것이라는 낙관은 경계해야 합니다. 상권의 본질인 다양성과 창의성이 거대 자본의 속도에 잠식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와 비즈니스 기획자에게 성수동은 단순한 ‘핫플레이스’가 아닙니다. 이곳은 도시 재생과 상업 자본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가장 역동적인 실험대입니다. 그 성패는 결국 우리가 상권의 정체성을 얼마나 존중하고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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