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동향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9억 아파트 12억 되자 '한숨' [새해 내집 마련]

2025.12.29 13:29
[편집자 주] 초강력 부동산 수요억제책인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시행된 지 두 달가량 지나 새해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경닷컴은 세 편에 걸쳐 전방위 대책 이후 시장을 진단하고 실수요자 입장에서 병오년 새해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올해 중순까지만 해도 전세 만기가 오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전세 만기가 다가오니 살 수 있는 집이 남아있지 않네요."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전세로 거주 중인 40대 직장인 황모씨는 최근 내 집 마련을 고민하다 결국 계획을 접었다. 그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지난 9월만 하더라도 9억원에 거래됐지만, 최근 실거래가는 12억원에 육박했고, 호가는 13억원에 다가서고 있다. 그나마도 매물이 자취를 감춘 탓에 남은 집은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다.

황씨는 "마음에 드는 매물이 하나 있었지만 전세 만기가 조금 남아 더 지켜보려 했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소식에 급매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매물이 사라지고 가격만 올랐다. 이제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고 토로했다.

황씨의 사례와 같이 최근 서울 주택시장은 '공급·매물 절벽'으로 요약할 수 있다.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자 임차인이 있는 주택의 거래가 사실상 막히면서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급감했다. 그 결과 10·15 대책 발표일 7만4044건이던 서울 아파트 매물은 두달 여 만에 5만8490건으로 22% 급감했다. 거래량이 줄었지만, 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이유다.


매물이 사라지자 시장은 이중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거래는 한산하더라도 인기 지역과 단지에서는 되레 신고가가 등장한다. 신고가 거래가 체결되면 남은 매물 호가는 신고가 위로 올라간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음에도 '거래 가능한 집'이 부족하다 보니 가격이 버티거나 되레 오르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내년 이후 예고된 공급 감소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 대비 48% 줄어든 1만6412가구에 그칠 전망이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서초구가 5155가구로 가장 많고, 은평구(2451가구), 송파구(2088가구), 강서구(1066가구), 동대문구(837가구) 등이 뒤를 잇는다. 반면 강북·관악·금천·노원 등 8개 자치구는 입주 예정 물량이 아예 없다.

기존 주택 매물 중 임차인이 있는 집은 거래가 막히고 신규 공급도 반토막 났다. 이런 와중에 '거래 가능한 매물'을 쥐고 있는 집주인들은 관망에 들어갔다. "지금 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은 "실제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이 크게 줄면서 집주인들이 가격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며 "호가로 20억원을 부르고, 계좌번호를 주지 않다가 21억원에 팔기도 한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집값이 이렇게 오른 상황에서 누가 사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강남·마포 등 선호 지역에서는 매물 1~2개를 두고 여러 수요자가 경쟁한다"며 "실거래가가 오르니 호가도 뛰고, 그 과정에서 실수요자들의 불안 심리가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린다"고 진단했다.


실제 서울 주요 지역에서는 최근에도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달 송파구 '잠실르엘' 전용면적 84㎡ 입주권은 48억원(25층)에 계약됐다. 지난 9월 33억원, 11월 40억원에 거래되더니 재차 한 달 만에 신고가를 갈아치운 것이다.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168㎡도 이달 77억원(28층)에 신고가를 썼다. 이전 최고가인 지난해 12월 67억원 대비로는 1년 만에 10억원 올랐다. 수요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공급 부족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시장은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가장 가혹하다. 가격이 급락할 때처럼 기다릴 명분도 없고, 본격적인 상승장처럼 과감히 매수에 나설 확신도 없다. 당장 매수하자니 자금 부담은 여전한데, 전세를 연장하면 집값이 더 오를까 불안하다. '지금도 어렵지만, 더 늦으면 기회가 사라질 것 같다'는 막막함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불안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심 소장은 "서울에서 새 아파트 공급 경로는 재개발·재건축이 사실상 유일한데, 이를 활발하게 해야 했을 시기에 사업이 막히면서 착공과 입주가 동시에 줄었다"며 "향후 10년은 구조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 집 마련을 미루는 선택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며 "분양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전세 기간이 끝난 4년 뒤 집값이 어찌 되어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집값이 오르면 전·월세도 함께 오르는 만큼, 실거주 목적의 1주택까지 포기하는 '집포'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당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오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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