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동시에 규제하는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시행 이후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지가 혼란에 빠졌다. 당장 이주를 앞둔 주민은 물론 새로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하는 주민도 다주택자와 이주비 대출 규제 등으로 사업 추진을 망설이고 있다. 서울 등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강조해온 정부 방침과 달리 민간 현장은 규제에 멈춰버린 셈이다.

◇이주비 대출 규제 혼란
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10·15 대책’에 따라 규제지역 내에서 이주비 대출을 받은 재건축·재개발 조합원은 대체주택 취득이 원천 금지된다. 동시에 투기과열지구 지정으로 매도 때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된다. ‘6·27 가계부채 관리 방안’(대출 규제)으로 이주비 대출도 6억원으로 제한돼 현금이 없는 조합원은 매매도, 이주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6억원 한도 내에서 기존 세입자 보증금 반환과 자신의 임시 거주비를 함께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을 진행 중인 서울 동작구 노량진1구역(2992가구)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이주에 나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주를 못 하겠다는 조합원이 늘었다. 조합원 약 1000명 중 70%가 다주택자로 분류돼 이주비 대출이 아예 막혔기 때문이다. 이 중 절반은 정부 정책에 따라 ‘1+1 분양’을 선택한 사람이다. 조합 관계자는 “이주비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굳이 재개발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주 대신 매도를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다. ‘10·15 대책’에 따라 조합원 지위 양도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조합원은 현금 청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앞둔 노량진3구역과 착공을 시작한 6구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6구역은 잔금을 준비해야 하지만 대출이 어려운 조합원이 상당수다. 처음 재건축 당시 생각했던 잔금 대출 한도가 대폭 축소돼 실거주도, 매도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노량진 뉴타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출 규제, 지위 양도 제한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강하게 건의하겠다”고 말한 배경이다.
◇추가 이주비도 ‘지역 차’ 심해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기준 68개 재건축·재개발 사업지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앞두고 있다. 5만 가구가 넘는 규모다. 이들 사업지 조합원의 가장 큰 관심은 ‘이주비 대출 한도’다. 지난 ‘6·27 대책’에 따라 기본 이주비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됐다. 다주택자는 아예 대출받을 수도 없다. 새로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하는 조합에서는 추가 이주비 대출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조달 금리가 기본 이주비 대출의 두 배에 달하는 데다 시공사도 여력 부족을 이유로 추가 이주비 대출 지원에 인색하다.
서울 강동구의 한 재건축 조합은 최근 조합원에게 “추가 이주비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은행과 시공사 모두 추가 이주비에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 다주택 조합원은 “팔지도 못하게 하면서 이주도 못하게 막았다”며 사업 속도 조절을 요구했다.
업계에서는 입지 여건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현장의 사업 파행을 막기 위해서는 이주비 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용산구 한남뉴타운은 금융회사가 앞다퉈 추가 이주비 대출 경쟁에 나선 데 비해 다른 강북 지역에서는 입찰 참여자를 찾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강동구 사업지까지 추가 이주비 대출이 거절되는 등 재건축·재개발 현장마다 지역 편차가 심하다”며 “조합원 지위 승계 제한을 풀어주거나 이주비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