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정책·규제 영향을 크게 받는 시장이지만 결국 수요의 힘이 작동하기 마련입니다. 시장경제는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거래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 즉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질서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한경닷컴은 매주 수요일 '주간이집' 시리즈를 통해 아파트 종합 정보 플랫폼 호갱노노와 함께 수요자가 많이 찾는 아파트 단지의 동향을 포착해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너 아빠가 평범해 보이지? 너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대기업 25년 차 부장으로 살아남아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애 대학까지 보낸 인생은 위대한 거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주인공 김낙수 대사 中)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류승룡 분)은 자신의 성공담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잇는 30대 김 대리에게 '서울 아파트'는 더 이상 현실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4인 가족 만점으로도 탈락할 만큼 청약 경쟁이 치열해졌고 분양가마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김 대리들은 서울 옆 경기도에서 나오는 새 아파트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26일 아파트 종합정보 앱(응용프로그램) 호갱노노에 따르면 11월 셋째 주(17~23일) 기준 앱에서 가장 방문자 수가 많았던 단지는 광명시 광명동 '힐스테이트광명11(2029년 입주·4291가구)'로 3만3443명이 다녀갔습니다. 서울에서 가까운 '옆세권'이고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마저 피해 가면서 296가구를 모집한 1순위 청약에 1만851명이 신청하며 평균 경쟁률 36.7대 1을 기록했습니다.

광명과 마찬가지로 서울 옆세권인 성남시에서 나온 청약 물량에도 높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복정역에피트(2028년 입주·315가구)'는 서울과 인접했고 4억원 가까운 시세차익도 기대된다는 점이 알려지며 2만8834명이 다녀갔습니다. 25일 110가구 대상으로 이뤄진 1순위 청약은 4010명이 신청해 당해 지역에서 마감됐습니다. 평균 경쟁률은 36.4대 1에 달했습니다.
성남시 복정1공공주택지구에 조성되는 이 아파트는 지하 2층~지상 20층, 총 315가구의 소형 단지이지만,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3.3㎡당 약 3500만원대에 공급됩니다. 국민 평형인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11억9900만~12억4900만원입니다. 인근 위례신도시에 있는 '위례역푸르지오6단지' 전용 83㎡ 최근 실거래가격이 16억50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4억원 상당의 시세차익이 예상됩니다.
결국 서울 접근성이 뛰어난 새 아파트를 주변 시세보다 약 4억원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보니 실수요자들이 몰린 셈입니다. 다만 성남시 거주 기간 2년 이상자에게 우선 공급되기 때문에 타지역 청약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습니다. 실제 복정역 에피트는 25일 성남시 거주자를 대상으로, 26일은 타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1순위 청약을 받을 예정이었는데 25일 당해 지역에서 1순위 청약이 마감됐습니다.

실수요자들은 광명이나 성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의왕시 새 아파트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의왕시 고천동에 들어서는 '의왕시청역SK뷰아이파크(2030년 입주·1912가구)'는 2만7962명이 다녀가며 방문자 수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기에 3.3㎡당 2950만원에 공급됩니다. 전용 59㎡ 기준으로는 7억7700만~7억9460만원, 전용 84㎡는 9억9640만~10억720만원입니다.
같은 지역에서 올해 4월 분양한 '제일풍경채의왕고천' 전용 84㎡ 분양가격이 7억810만~7억4140만원이던 점을 감안하면 분양가격은 상당히 높게 비칩니다. 하지만 제일풍경채의왕고천이 분양가 상한제 단지였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지역 중개업소들의 평가입니다.
지역 A 공인중개 관계자는 "입주 시점이면 인덕원~동탄 복선전철 의왕시청역이 단지 앞에 생겨 서울 접근성이 크게 개선된다"며 "서울이나 인접 지역과 비교하면 집값이 절대적으로 저렴하기에 신혼부부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단지)인 데다가 일대 정비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향후 정주 여건 개선이 기대된다는 점도 실수요자들이 관심을 두는 부분입니다.

분양 시장에서는 실수요자들의 수도권 내 집 마련 열기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 내 집 마련이 어려운 것은 물론 전·월세 시장 불안이 계속되면서 서울에서 세입자로 살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KB부동산이 발표한 월간 주택통계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130.2를 기록, 처음으로 130을 넘어섰습니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전세대출 보증 요건 강화, 1주택자 전세대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포함 등 각종 규제로 전세 매물이 감소하면서 실거주 수요가 월세로 밀려난 영향입니다. 공급이 받쳐주지 않는데 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수급 불균형이 커진 셈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도 큰 폭으로 줄어들기에 무주택자들의 주거비 압박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서울살이가 어려워지면서 서울 밖 수도권 유망 단지를 두고 안정적인 거주지를 원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경쟁이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