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추락으로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에 안착하면서 건설업계 전반에 '비용 쇼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건설 자재 가격이 오르면 공사비와 분양가 상승 압박도 커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내년 주택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2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 거래일보다 1원50전 오른 1477원10전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지난 4월 9일(1484원10전) 이후 7개월여 만의 최고치다.
이같은 고환율로 인해 관련 업계에서는 공사비가 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레미콘, 철근, 골재, 전선, 산업용 가스 등 주요 자재는 수입 원료 비중이 높아 환율이 뛰면 원가도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조사에서 9월 공사비지수는 131.66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월평균 1392원대였다. 이달 환율이 더 오르면서 자재비 부담도 커졌다. 이미 건설 현장에서는 수요가 급격히 줄었는데도 환율로 인해 자재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수도권 레미콘 출하량은 124만㎥를 기록, 전년 동기 170만㎥ 대비 약 30% 감소했다.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면 가격은 낮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시장 단가는 조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멘트 제조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유연탄 가격이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레미콘 업계에서는 고정비 비중까지 높아진 탓에 오히려 가격을 높여야 할 상황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철근 시장 상황도 비슷하다. 환율 급등으로 일본·중국산 수입 철근이 가격 경쟁력을 잃으면서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수입량은 전년의 절반도 되지 않는 9만t까지 쪼그라들었다. 저가 수입산 철강 유입이 급감하자 국내 제강사들은 감산을 통해 가격 방어에 나서는 모양새다. 결국 수요 부진에도 자재 가격은 그대로인 고비용 구조가 고착하는 셈이다.
자재비 상승은 자연스럽게 공사비와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서울 민간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2022년 2983만원에서 올해 4829만원으로 62% 증가했는데, 분양가격이 더 오른다면 서민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문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자재 조달은 보통 연 단위로 계약하기에 아직 공사비에 큰 영향을 주진 않고 있다"면서도 "환율이 실시간으로 반영되지 않게 방어하곤 있지만, 그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내년 이후로는 고환율로 인한 자재비 상승이 공사비와 분양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고환율이 일시적인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 뉴노멀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올해 10월 말 기준 89.09에 그치며 전월 대비 1.44포인트(P) 하락했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와 비교해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원화 실질 가치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이미 크게 낮아졌다는 뜻이다. 외환시장 안팎에서는 환율이 1500원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환율은 주택 공급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공사비가 오르면 재개발·재건축 사업성이 악화하고, 조합 부담이 커지면서 사업 지연이 발생할 수 있는 탓이다. 분양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주택 공급마저 줄어들며 시장 불안 요인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내 집 마련의 문턱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로 인해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도 어려워지고 있다"며 "원가 상승으로 인해 분양가가 뛰고, 공급 지연으로 시장 불안이 확대하면서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