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도

'9년 전세법'에 발칵…"세입자도 집주인 면접 봐라" [돈앤톡]

2025.11.24 13:48

최근 국회에서 '전·월세 9년 갱신법'이 발의되고, 이에 반발한 집주인들이 '임차인 면접제' 도입 청원에 나서면서 선진국 임대차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세입자 주거권을 강력하게 보호하지만, 세입자를 뽑을 때도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회에서는 전·월세 임대차 계약 기간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횟수를 2회로 변경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개정안은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가 대표로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의원들이 동참했다.

시장에서 냉담한 반응이 쏟아지자 한 대표는 이달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세입자 보호가 초보적인 수준"이라며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임대차 기간이 무제한"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국가는 집주인이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도록 규제하고, 세입자의 거주 기간도 국내보다 길다.

프랑스는 최단 임대 기간 3년을 보장하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임대차 계약이 자동으로 갱신된다. 독일도 세입자 평균 거주기간이 12.8년에 달할 정도로 강력하게 세입자를 보호하고 있다. 미국 역시 뉴욕 등 일부 주에서는 1947년 이전 건물에 1971년 이전 입주한 세입자에 대해서는 당시 임대료만 받도록 하는 '렌트컨트롤법'이 시행되고 있다. 정당한 이유 없는 임대차 계약 해지도 제한된다.


한 번 들어온 세입자를 쉽게 내보낼 수 없는 만큼, 이들 국가에서는 세입자를 뽑을 때도 서류 전형과 면접 등으로 구성된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 직장과 소득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 평판 검증을 위해 이전 집주인의 추천서까지 요구할 정도다.

미국은 세입자가 신용점수, 고용·소득 증명, 범죄기록, 이전 집주인 추천서까지 제출하는 'Tenancy Screening' 제도가 널리 퍼져 있다. 반려동물이 있다면 반려동물 면접까지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고, 집주인이나 관리회사와의 면접을 통해 생활 방식과 직업 안정성, 거주 태도 등을 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용점수가 낮거나 이전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험하게 썼다'는 등의 평가를 받으면 새집을 구할 길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집주인에게 자신의 신용평가서와 6개월 치 급여명세서, 고용계약서, 부채 및 세금 납부 정보 등을 제출해야 한다. 집주인은 신청자들로부터 받은 서류를 검토해 면접 대상을 지정하고, 이후 설문과 면담을 통해 최종 세입자를 선정한다. 주거 선호도가 높은 베를린 등의 아파트에서는 월세를 살기 위해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다.

프랑스 역시 고용 계약서와 급여명세서, 세금 신고서, 보증인의 소득과 세금 명세 등 다수의 문서를 제출해야 한다. 집주인은 제출된 문서를 바탕으로 면접 대상을 선정하고 주거 목적과 가족 구성, 거주 태도 등을 확인하는 면접을 거쳐 세입자를 뽑는다. 이전 거주지에서 월세를 밀리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면 이러한 면접을 통과하기 어렵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외국인 여성 최초로 '올해의 파티시에'에 등극한 김나래는 KBS 2TV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해 "집을 구하기 위해 보증인의 1년 치 소득과 세금 명세, 임차인 고용계약서, 이전 집에서의 월세 증빙 서류 등을 제출했다"며 "이 집을 구했을 때도 30명 정도 경쟁자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들 국가는 기존 세입자에 대한 강력한 보호로 인해 임대차 매물 대부분이 계약갱신에 묶였고,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적기에 신규 세입자가 되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힘들다.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은 새로운 집을 구하기까지 수백 곳에서 경쟁해야 하고, 대도시에서는 100대 1을 넘어서는 경쟁률도 흔하기에 세입자들은 집주인의 깐깐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국내 시장에서도 비슷한 임대차 문화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집주인의 정보 공개가 강화되고 세입자 주거권 보호가 강화하는 만큼, 상호주의 측면에서 세입자에 대한 정보 공개 요구가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세입자 정보 공개 의무화를 요구하는 '악성 임차인으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한 임차인 면접제 도입' 청원이 게시됐다.

업계 관계자는 "소위 '선진 임대차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월세 시장이기에 국내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면서도 "국내의 경우에도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율이 66%에 달할 정도로 전세 제도가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제화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고액 월세부터 임차인 검증 과정이 퍼져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오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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