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을 주도하는 고위 공직자 상당수가 다주택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주택 공직자 승진 제한, 부동산 백지신탁 제도 도입 등도 거론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5년 전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직' 대신 '집'을 택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최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핵심 부처 고위 공직자들이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로 시세차익을 내고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은 갭투자 논란 끝에 사임했고, 이찬진 금융위원장은 보유 주택 중 1채를 자녀에게 증여하겠다고 했다가 비판 여론에 떠밀려 결국 매각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다주택 공직자에 대한 승진을 제한하고 부동산 백지신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희정 의원은 "다주택 공직자 승진 제한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에 얘기했다"며 제도 도입 검토를 요청하자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당시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정책 반영 여부는 의견 수렴한 후 말씀드리겠다"고 답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2020년 주장한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2020년 "여러 채의 집을 가진 공직자가 부동산 정책을 논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다주택 공직자에 대한 인사 감점을 시행한 바 있습니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고위 공직자의 다주택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신탁사에 맡겨 공직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미 고위 공직자가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는 관련 제도가 시행 중입니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역풍이 거세지자 제기된 논의이지만, 사실 고위 공직자에게 1주택만 남기고 부동산을 처분하라는 요구는 이전 문재인 정권에서도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 고위 공직자 상당수는 직보다 집을 택했습니다. 부동산 백지신탁도 논의됐지만, 공직자들의 반발이 거세 도입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당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심각한 상황이고 고위공직자들의 솔선수범이 꼭 필요한 시기가 됐다"며 고위 공직자는 물론 국장급 공직자에게도 주택 매각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과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은 다주택을 처분하는 대신 퇴임을 택했습니다.
다주택을 처분한 경우에도 '똘똘한 한 채'만 남기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울 반포와 충북 청주에 집을 보유한 상태로 다주택 처분을 권고해 논란을 샀고, 이후에도 반포 아파트를 남기고 지역구인 청주 아파트를 팔겠다고 밝히면서 똘똘한 한 채 논란을 유발했습니다.
윤성원 전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도 강남 아파트를 남긴 채 세종시 아파트를 처분했고,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도 서초 아파트를 남기고 세종시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서초 아파트를 남기며 용인 아파트를 매각했고 김양수 전 해양수산부 차관도 세종 아파트를 처분하면서 용산 아파트를 지켰습니다.
고위 공직자들이 다주택 처분을 거부하거나 처분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미온적인 모습을 보인 탓에 관가에서는 "문 대통령 말을 들은 사람은 윤석열뿐"이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전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와 송파구에 각각 한 채씩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다주택 처분 권고가 나온 직후 송파구 아파트를 매각했습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번 정부에서도 공직자에게 다주택 처분을 강제한다면 직 대신 집을 택하는 모습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직은 잠깐이지만 집은 영원하다는 이유입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미 (이상경) 국토부 차관이 이를 증명하지 않았느냐"며 "주택 정책을 좌우하는 공직자가 집을 선택했는데, 다른 공직자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집값을 통제하지 못한 5년 전 상황도 반복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