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부동산 시장의 열기가 식을 줄 모릅니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도쿄 23구 기존 콘도미니엄(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2025년 9월 기준 전월 대비 2.9% 상승한 70㎡당 1억1034만엔(약 10억3700만원)을 기록했습니다. 1997년 조사 시작 이후 17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전년 대비로는 무려 37% 급등했습니다. 신축 콘도의 평균 분양가 또한 3개월 연속 1억엔(약 9억4000만원)을 넘어 새로운 가격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가격과 거래량이 동시에 오르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9월 기존 아파트 거래량은 전년 대비 56.6% 급증하며 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승은 단순한 건축비 인상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건축비는 36.4%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콘도 가격은 62.3% 올랐습니다. 특히 2022년 이후 그 격차가 더욱 벌어졌습니다. 2022년 대비 올해 상반기 아파트 가격은 40% 이상 상승한 반면, 건축비는 20% 미만의 상승에 그쳤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전가가 아니라 공급 부족과 수요 집중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공급 절벽은 도쿄 시장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지난해 도쿄 23구 신규 콘도 공급은 8275가구로 2019~2023년 평균 대비 32% 감소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1% 줄었습니다. 미쓰비시 UFJ 신탁은행 조사에 따르면 개발사의 73%가 “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도심 내 공장 부지, 기업 사택, 공공용지 등 대규모 개발이 가능한 부지가 거의 소진되었고, 남은 토지는 호텔과 상업시설과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여기에 건축비 상승과 인력난까지 겹치며 신규 공급은 더욱 위축되고 있습니다.
수요 측면에서는 ‘파워 커플’이라 불리는 고소득 맞벌이 부부가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했습니다. 연소득 700만엔(약 6580만원) 이상의 맞벌이 가구는 약 45만가구로, 10년 전의 두 배가 넘습니다. 이들은 1억엔 안팎의 프리미엄 주택을 주요 타깃으로 삼으며, 주식시장 호황으로 자산이 늘어난 부유층과 함께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참여도 활발합니다. 럭셔리 부동산 전문회사에 따르면 현재 기존 콘도 거래의 약 30%가 외국인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미나토구·주오구 등 도심 핵심 지역의 대형 고급 주택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가격 격차는 지역별로 극명합니다. 도심 6구(치요다·주오·미나토·신주쿠·분쿄·시부야)의 평균 호가는 70㎡당 1억7550만엔(약 16억5000만원)으로 전월 대비 3% 상승하며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특히 치요다구는 2억5103만엔(약 23억6000만원)을 기록해 불과 8개월 만에 2억엔에서 2억5000만엔으로 뛰었습니다. 반면 아다치구(足立区)나 가쓰시카구(葛飾区) 등 외곽 지역은 4000만엔대(약 3억7600만원)에 머물며, 도심과 외곽 간 가격 격차가 5배 이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축 공급이 줄면서 실수요가 기존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축 진입 장벽이 높아지자 실수요자와 투자자 모두 기존 콘도를 대체재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리노베이션을 통한 자산가치 상승 기대가 더해지며, 기존 주택이 시장 유동성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임대 시장 또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새빌스는 2025년 내내 도쿄 23구의 임대료와 점유율은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외국인 유입이 이어지고 신규 공급이 제한되면서 임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가 주택 가격과 금리 상승이 겹치며, 매수보다 임차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매매시장과 임대시장의 수급이 모두 빠듯해지면서, 임대수익률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시세도 오르는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열 분위기에 일본은행(BOJ)도 제동을 거는 모습입니다. 도쿄권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2020년 대비 33%, 상업용은 30% 치솟자, BOJ는 부동산 관련 대출 확대와 비은행권의 위험 노출 증가가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주식시장도 ‘적색 과열’ 단계로 분류된 상황이라, 주가가 급락할 경우 은행권의 평가손실 위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최근 늘어난 해외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일본 내 거래는 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동시에 변동성도 키울 수 있는 양날의 검으로 지목됩니다.
도쿄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흐름은 한국에도 분명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공급 부족, 부유층 중심 수요, 외국인 투자 확대라는 삼박자가 서울 강남권 시장 구조와 닮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외국인 규제가 거의 없는 반면, 한국은 지난 8월부터 외국인에게 2년간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토지거래허가제를 시행하며 투기 억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도쿄의 공급 제약은 강남보다 훨씬 심각하며, 이 차이가 향후 장기적인 가격 흐름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될 것입니다.
중장기적으로 도쿄도의 가구 수는 2035년까지 증가할 전망입니다. 일본 전체 인구는 감소하지만, 수도권 집중은 지속될 전망입니다. 이에 따라 도쿄도 정부는 서민층을 위한 저가 주택 공급 방안을 검토 중이며, 주택 문제가 국가적 정책 의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도쿄 시장을 본다면, 핵심은 '희소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시장은 쉽게 식기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단기 차익을 좇기보다는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시세 차익(자본 이익)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환율, 금리, 유동성 관련 위험은 보수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자산의 가치를 높이거나, 도심 핵심지와 그 주변(세컨더리) 지역으로 투자 대상을 나누는 분산 전략이 유효한 접근법이 될 것입니다.
결국 대도시 부동산 시장의 핵심은 공급이라는 점을 도쿄 사례가 명확히 보여줍니다. 수요 억제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기에, 지속 가능한 공급 확대 방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공급이 귀해지는 희소성의 시대일수록, 속도에 치중하기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용남 글로벌PMC(주) 대표이사 사장"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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