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부동산 시장은 관망세로 접어들게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달리 서울 모든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은 점도 과감했지만,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포함해 대출 규제가 적용되지 않던 정책대출과 중도금대출에 대한 걱정도 키웠습니다. 이전 대책이 '주거 사다리 끊기'라면 이번 대책은 '주거 사다리 걷어차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설펐던 점들도 지탄을 받습니다. 상가와 오피스텔도 대출 규제에 적용된다고 안내했던 점, 금융위에서 서민대출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60%까지 가능하다고 추가 보도자료를 낸 점 등은 이번 대책이 설익은 것이라는 치부를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됐든 대책은 발표됐고 토지거래허가제도 시행됐습니다. 부동산 대책을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니 계속 규제하겠다기보다는 자꾸 규제하니 곳곳에서 가격이 오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가격을 잡겠다고 규제를 계속하는 지금의 부동산 대책 기조는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경제학 원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헌법에서는 모든 사람이 적절한 주거지 및 정주 환경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내 집 마련 기회는 심각하게 훼손됐습니다. LTV가 40%로 줄어들면 저가 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은 더욱 크게 위축됩니다. 15억원 아파트의 40%는 6억원이지만, 5억원 아파트의 40%는 2억원이기 때문입니다. 서민대출을 다시 늘렸다지만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하기에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순 없습니다.
투기와 실수요를 구분하지 못하는 부동산 대책을 내놓다 보니 시장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많은 전문가가 이번 규제의 유효기간이 3개월 안팎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의 말과 행동이 따로 놀면서 주택 수요자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된 탓입니다.
대통령은 후보나 당선인 시절 "부동산 대책을 너무 많이 내놓은 것은 지양하겠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왔습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부동산 대책을 계속 내놓겠다고 언급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 고위 관료들은 부동산 세제 개편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9·7 공급대책은 오히려 집값을 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정부가 너무 빠르게 시장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수십차례 대책을 쏟아내며 규제에 나섰던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폭등시켜 국민 불안을 키웠습니다. 현 정부는 과거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만 합니다.
지금 시장에서 아파트를 사는 이들은 대부분 실수요자이고, 이들의 내 집 마련은 자기 자산을 지키기 위한 작은 몸부림일 뿐입니다. 서민이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것마저 투기라고 단정하는 것은 재무학의 기본도 이해하지 못한 비상식적인 행태입니다.
더 큰 문제는 '내로남불'입니다. 현 정부 고위 관료와 여당 국회의원 중 많은 수가 갭투자 상태로 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보유와 취득 행태가 그간 주장한 정책 기조와 맞지 않으니 다수 국민들에게는 '나는 이미 비싼 집을 구입했으니 서민과 중산층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로 비칩니다.
"정책을 통해 가격이 안정되면 그때 집을 사라"던 고위 관료는 배우자 갭투자를 통해 1년여 만에 6억5000만원 수준의 시세차익을 거뒀습니다. 당사자는 통상적인 갭투자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남 탓'과 '마녀사냥'도 이어집니다. 지금 서울 집값 상승의 절대적인 원인은 주택 공급을 차단한 전임 서울시장과 문재인 정부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 시장과 전임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행태는 시장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과감하게 대출 규제를 도입하고 폭넓게 규제지역을 확대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권 초기에 쓸 수 있는 규제를 모두 사용하면 더 이상 쓸 카드가 없는 '엔드게임'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시장은 먼저 내놓은 규제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집값을 좌우하는 모든 변수는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채 헛발질만 계속할 경우 서울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5년 뒤에는 누구 탓을 할지 벌써 걱정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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