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사회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범여권에서 전세 계약갱신 청구권을 최대 9년으로 늘리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장에서는 수도권에서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임대차 계약 기간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횟수를 2회로 변경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현재 전세 계약 기간이 2년이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2년을 추가해 4년으로 늘릴 수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3+3+3으로 총 9년 동안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개정안은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대표로 발의했고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정춘생 조국혁신당,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최혁진(무소속), 윤종오 진보당, 정혜영 진보당, 신장식 조국혁신당, 전종덕 진보당, 손솔 진보당 의원이 동참했습니다. 사실상 범여권의 개정안인 셈입니다.
한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이 늘어나면서 '전세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지만, 현행법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의 빈틈을 악용한 전세사기 구조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정안에는 임대인 정보 공개를 강화하는가 하면 임차인 대항력 발생 시점을 '입주 다음 날 0시'에서 '입주 당일 0시'로 앞당기고 보증금도 주택 가격의 70% 이하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까지 담겼습니다.

그간 범여권은 '무제한 전세 갱신권'을 꾸준히 추진해왔습니다. 2020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전월세 무한 연장법'은 세입자의 거주권을 지속 보장하면서 보증금 인상률은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해당 법안이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2년 거주 후 1회 계약갱신을 하는 현재의 임대차 3법으로 완화됐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세입자가 계약갱신 청구권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5명, 진보당 2면, 조국혁신당 1명 등 범여권 의원들이 대거 동참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일부 의원이 서명을 철회하며 무산됐습니다.
올해도 관련 논란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을 앞둔 지난 3월 '20대 민생의제'를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주거정책으로 '전세 계약 최장 10년 보장'이 포함됐습니다.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큰 반발을 샀고, 결국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공식 입장이 아닐뿐더러, 개인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라며 진화에 나서야 했습니다.
범여권이 재차 들고나온 '9년 갱신권'에 부동산 업계 반응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한 번 세입자를 들였다간 최대 9년 동안 보증금이 제한되기에 임대인들이 물건을 거둬 전세대란이 벌어지고, 전세의 월세화도 한층 가속할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한 개업중개사는 "계약갱신권으로 인한 이중가격 문제를 이미 수년째 겪고 있다"며 "지금도 임대인들이 전세를 기피해 월세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9년 갱신권을 도입하면 누가 전세를 공급하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만 폭등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습니다.
수도권은 지난 6·27 대출 규제를 통해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서 전세 물건도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 6월 초 2만5000건에 육박하던 서울 전세 매물은 이달 들어 2만3000건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같은 기간 경기도 역시 2만4000건대에서 1만9000건대로 감소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며 "임차인 주거 안정 강화를 내세워 전세 계약 갱신 기간을 10년 안팎으로 늘린다면 전세가 반전세로, 반전세가 다시 월세로 전환하는 전세의 월세화만 가속해 서민 주거 부담을 키울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