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에 대한 정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건설업계가 안전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 교육 등이 늘어나고 근로자들의 근로 시간이 줄면서 공사 기간은 연장 문제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A 중견 건설사의 수도권 아파트 공사 현장은 근로자 전체 조회와 몸풀기 체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시공사 안전관리자가 당일 작업에서 유의해야 할 안전 문제와 수칙을 설파하고, 협력 업체별로도 작업반장들이 각자 소속 근로자를 모아 안전 회의(TBM)를 진행합니다.
과거에는 근로자들이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는 정도에 그쳤지만, 최근 대통령이 나서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하는 등 산업재해 리스크가 커지자 안전교육 시간이 크게 늘었습니다.
A사 관계자는 "안전교육이 대폭 강화되고 장비 점검도 한층 꼼꼼하게 하면서 오전엔 제대로 작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며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고 하지만, 이래서야 공사 기간을 맞출 수 있을지 우려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대형 건설사 B사도 최근 전국 각 현장으로 전체 임원을 파견해 안전 점검을 실시했습니다. 현장과 관련 없는 사무조직 임원들까지 장기간 안전 점검에 투입되면서 각 부서 업무에 공백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마다 다르지만, 통상 2~3주씩 기간을 잡고 모든 임원이 나서는 집중 안전 점검을 연 1회 정도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며 "일부 건설사들이 이러한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할 조짐을 보이면서 직원들의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건설사들이 다소 과할 정도로 안전 관리에 품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원청을 엄중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며 "하지만 원청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결국 '눈치껏 잘하라'는 의미이니 티가 날 정도로 과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푸념했습니다.
폭염과 폭우 등 악화한 기상 여건도 건설사들에는 부담 요소입니다.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면서 폭염이 잦아지자 '체감온도 33℃ 이상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이 의무화됐습니다. 근로자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서 필요한 휴식이지만, 그만큼 공사는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콘크리트 표준시방서를 개정하면서 올해부터 우중 타설도 금지됐습니다. 시간당 강우량이 3㎜를 넘으면 콘크리트 타설이 일절 금지되며, 3㎜ 이하인 경우에도 감리 승인과 방수 조치를 조건으로 제한적인 허용이 이뤄집니다. 더워도 공사를 쉬어야 하고 비가 내려도 공사를 할 수 없는 셈입니다.
공사 속도가 더뎌지면서 갈등을 겪는 현장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방에 아파트를 짓고 있는 C 건설업체 관계자는 "안전교육이 늘어나면서 8시간 일해야 할 것을 6시간밖에 못하다 보니 공기 지연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며 "건설 현장이 다소 외진 곳이기에 근로자에게 숙소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공사 기간이 늘어나면서 이 비용 부담도 커져 공사비를 증액해야 할 처지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가뜩이나 부족한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공기 지연으로 공급 시점이 늦춰지고, 그나마도 공사비 상승으로 분양가격이 치솟으며 주택 시장을 자극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비가 오는 날은 콘크리트 타설을 중지하고, 무더위에는 야외 작업을 금지한다.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도 커졌다"며 "작업이 늦춰지는 만큼 공사 기간은 늘어나고, 공사비도 더 오르는 구조적 문제가 고착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