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방안(6·27 대책) 이후에도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집값 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세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매매가격이 전셋값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고 있어서다. 매매와 전세 수요자 모두 골머리를 앓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은 아파트 투자 가치에 대한 기대가 점점 떨어지면서 전세가율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강남권 아파트 전세가율 ‘뚝’

2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2.8%(최근 3개월간 실거래 기준)로 집계됐다. 지난 4월 56.5%에서 3개월 연속 전세가율이 낮아졌다. 이 기간(4월 대비 7월) 송파(50.9%→42.9%)와 서초(49%→41.2%), 성동(52.6%→44.9%), 마포(56.9%→50.7%), 강남(46.3%→40.6%), 영등포(56.2%→50.5%) 등 지역에서 전세가율 낙폭이 컸다. 올 들어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전세가율 하락은 전셋값보다 매매가격이 더 가파르게 상승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27 대책도 이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주택담보대출 6억원 제한 등 강력한 대출 규제로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었지만 ‘공급 부족’ 우려 등으로 가격 상승세 자체가 꺾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전셋값 하락으로 전세가율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보니 전세시장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윤수민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대출 규제로 보증금을 마냥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라 표면적으론 전세시장이 안정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도 “시장에서 순수 전세 매물 자체가 크게 줄고, 반전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어 임차인의 부담은 더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갭투자 금지, 주담대 실행 시 6개월 내 전입 의무, 잔금대출 규제 등으로 전세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빌라(다세대·연립) 시장은 전세가율 하락세가 더 두드러진다. 서울 빌라 전세가율은 작년 7월 70%에서 지난달 61.8%까지 내려갔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기준이 강화돼 전셋값이 내려간 영향이 크다. 다만 보증금 하락분이 월세에 전가되는 ‘월세화’ 현상이 강해져 수요자의 주거비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지방은 ‘깡통전세’ 경고음
지방 아파트 시장은 서울과 딴판이다. 비수도권의 아파트 전세가율은 4월 73.7%에서 지난달 74.6%로 뛰었다. 비율 자체도 서울보다 20%포인트 넘게 높을뿐더러 최근 3개월 연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통상 매매가는 투자 가치, 전셋값은 사용 가치에 따라 형성된다. 지방의 전세가율이 높은 건 그만큼 미래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수요자가 적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시세 차익 기대가 작으니 굳이 주택을 매수하려 하기보다 전세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세가율이 80%를 넘어 ‘깡통전세’ 경고음이 울리는 지역도 적지 않다. 지난달 기준 경남 사천(87.6%), 충북 제천(85.7%), 경남 거제(85.1%), 전북 익산(85%) 등의 아파트 전세가율은 85%를 웃돌고 있다. 강원 강릉은 빌라 전세가율이 90%를 나타냈다. 업계 관계자는 “거제 같은 산업도시는 과거 조선업이 호황일 땐 부동산 가격이 덩달아 올랐는데, 최근엔 외국인 근로자가 급증하면서 이런 흐름도 끊겼다”고 말했다. 전세가율이 높으면 가격 하락기 때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인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