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성훈의 지속 가능한 도시] 파리에서 배우는 도시 철학

2025.07.16 13:16
파리에서 배우는 우리 도시의 지속가능성

파리. 그 이름만으로 낭만과 예술, 사랑이 떠오르는 도시다.

2024년 여름, 전 세계의 시선이 파리로 쏠렸다. 역사와 예술의 도시, 낭만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축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파리 올림픽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파리 2024 올림픽의 공식 슬로건은 바로 "완전히 개방된 대회(Games Wide Open)"였다. 이 슬로건은 단순히 모두에게 열린 축제라는 의미를 넘어, 도시의 물리적인 공간, 특히 파리가 자랑하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올림픽의 무대로 '활짝 개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센 강, 에펠탑 앞 샹 드 마르스 공원, 베르사유 궁전, 그랑 팔레 같은 파리의 상징적인 장소들이 경기장으로 탈바꿈되었다. 새로 짓기보단 기존의 공간을 활용하는 것, 그 선택에는 파리가 지향하는 도시 철학이 담겨있다. 도시의 오랜 유산을 파괴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그것을 현대적인 삶과 미래 비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파리의 방식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 화려한 우리 도시의 이면

우리는 숨 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했고, 한국은 그 최전선에 서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고, 세계는 ‘K’로 시작하는 문화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정말 행복하게 사는 걸까?’


대한민국은 빠르게, 많은 걸 이뤄냈지만, 동시에 불안과 피로도 함께 커져 왔다. 기후 위기는 현실로 다가왔고,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다. 출산율은 0.6까지 떨어졌고, 청년 취업난은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실마리는, 우리가 일상처럼 딛고 살아가는 ‘공간’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알려져 있다. 효율과 수익이 도시를 결정하고, 개성 없는 단지가 도시를 덮었다. 모든 공간이 단순히 '방'처럼 기능적인 프로그램으로만 채워지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연결은 점차 줄어들었다. 자연은 멀고, 이웃은 낯설다. 그 틈을 온라인이 채우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숨 쉬고 '함께' 느끼는 오프라인 공간, 즉 함께하는 공간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느낀다. 행복과 우리가 사는 공간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한 도시와 지속 가능한 도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하여

그런 생각 끝에,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보냈던 13년이 떠올랐다. 약 13년간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실무생활을 하였고, 그곳에서 두 딸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프랑스 건축가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건축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삶의 방식과 도시 공간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었다.



에펠탑이나 루브르가 사람들의 행복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 안에 숨어 있는 ‘공간의 철학’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다는걸, 파리에 살며 실감했다. 많은 사람이 파리를 단순히 문화, 예술, 패션의 도시로 알고 있다. 물론 파리는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매력적인 도시지만 13년간 파리에서 경험하고 느낀 파리는 그 이상이다. 파리는 철저한 도시 계획과 공공장소의 설계로 이루어진, '똑똑한 지속 가능한' 도시다. 놀라운 점은 파리는 자신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최대한 보존하고 유지하면서도,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가와 같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는 도시 구조와 계획을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최근 전 세계의 화두가 된 '15분 도시' 개념도 파리에서 시작됐다. 기존 시설을 재사용하고, 도시 전체를 모두에게 내어주는 방식. 2024 파리 올림픽은 그런 도시 철학을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했다. 파리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서의 비전을 제시한다.

내년은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는다. 파리에서 건축을 배우며 체감한 그들의 도시 전략은, 지금 한국이 직면한 저출생과 공간 문제에 의외로 현실적인 힌트를 준다. 파리는 어떻게 높은 인구 밀도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여유와 행복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파리의 오래된 거리와 새로운 공원,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도시 계획과 정책에는 어떤 지속 가능한 도시의 비밀이 담겨 있을까? 파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도시를 넘어,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도시 공간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 탈바꿈한 파리의 사례를 통해, 한국 도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 칼럼에서는 파리의 도시 철학이 한국 도시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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