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도

학습효과를 이길 부동산 대책은 없습니다 [심형석의 부동산정석]

2025.07.08 14:28

학습효과는 반복된 경험으로 기억에 저장되는 인지 현상을 말합니다. 연구방법론에서는 같은 대상에게 똑같은 실험을 시키더라도 학습효과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를 주택시장에 적용하면 과거와 유사한 부동산 정책을 몇 번 겪으면 이후 시장 반응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시장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학습효과의 경험을 너무 일반화하는 사고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6·3 조기 대선이 결정된 후 한 달 동안의 부동산시장은 학습효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탄핵 선고 후 2달 동안 치른 대선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대통령이 이변 없이 당선됐습니다. '보수정권에서는 집값이 안정되고, 진보정권에서는 집값이 오른다'는 업계 통용 공식이 있는데 당시 여론조사가 이재명 후보에 압도적으로 좋게 나오자 당분간 집값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에 집을 사는 수요가 많이 늘었습니다.

토지거래허가제 해프닝에서 비껴간 성동구와 마포구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한 주에 1% 수준이었습니다. 이를 연율로 환산하면 연간 50%가 넘는 상승률입니다. 올 하반기에는 기준금리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연 2.5%인 현재 기준금리가 연 2%로 떨어진다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연 3% 초반대로 자리 잡게 됩니다. 연 3% 초반대의 금리는 작년 집값 반등을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지원군이었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동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줄어듭니다. 서울은 한 해에 5만 가구가 입주해야 적정 물량인데, 2026년부터 2028년 3년 동안 2만600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라 입주절벽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이 상황을 정말 슬기롭게 극복하지 않으면 엄청난 집값 상승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울 아파트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만 공급할 수 있어 더욱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주택수요자는 1000가구 규모 대단지 아파트를 공급해야 만족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공급은 물 건너갔다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그동안 좋지 않았던 내수 경기도 이재명 정부의 민생 회복 지원금 효과에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1차 추경과 합치면 35조원 가까운 예산이 편성되고 7월 중에는 국민들에게 풀릴 수 있다고 하니 내수 경기 회복은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설 다주택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수요억제책을 쓰며 부동산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취임 한 달 국민과의 대화에서 여전히 부동산 투기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이재명 정부 또한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에 사로잡혀 주택시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부동산 대책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일부 매체에서는 이번 대출 규제로 아파트 가격이 폭락한 것처럼 언급하지만, 서울의 주거 선호 지역은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이번과 유사한 대책이 나왔던 2019년 12월과 비교하면 서울의 주택시장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습효과 때문일 겁니다.


2019년 12월 발표된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용 시기도 지금과 비슷하게 발표 다음날부터였습니다. 당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던 서울 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2%에서 0.1%로 반토막 났습니다. 가장 크게 피해를 봤던 강남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0.33%에서 0.1%로 더 많이 내렸습니다.

하지만 7월 한국부동산원에서 발표된 통계를 보면 6월 30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43%에서 0.4%로 0.03%포인트 하락했을 따름입니다. 가장 크게 피해를 봤을 강남 3구도 0.82%에서 0.7%로 하락하는 데 그쳤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역대급 부동산 대책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통계만이 아닙니다. KB부동산의 통계 또한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44%에서 0.31%로 감소했지만 ‘역대급 대출 규제’라는 이번 대책의 수식어에 비하면 상승 폭 감소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대출 규제가 역대급 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좌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답습해서는 안 됩니다.

대출금액의 상한을 설정한 지금 정책은 다소 새롭다는 느낌은 있지만 잘 분석해보면 2019년 12월 발표된 부동산 대책의 아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유기체인 주택시장에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갈수록 심각해질 수급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직 카드가 많이 남아있다는 이야기가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 반복해서 들어왔던 수사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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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심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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