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시장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초강력 대출 규제' 불똥이 전세시장으로 옮겨오면서다. 시장 일각에선 하반기에 '전세 대란'이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리센츠'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14억원(19층)에 새로운 세입자를 들였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비슷한 층이 12억원(18층)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반년 만에 2억원이 뛴 셈이다.
같은 동에 있는 '트리지움' 전용 84㎡도 지난달 13억5000만원(20층)에 신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 이 면적대 전셋집은 11억원(24층)에 세입자를 구하기도 했는데 이보다 2억5000만원이 상승했다.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고덕그라시움' 전용 84㎡는 지난달 11억원(20층)에 세입자를 찾았다. 지난 1월 8억2000만원(19층)에도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던 면적대다. 연초 대비 2억8000만원이 상승했다.
맞은 편 상일동에 있는 '고덕아르테온' 전용 84㎡도 지난달 9억5000만원(25층)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지난 1월 맺어진 신규 계약 7억8000만원(20층)보다 1억7000만원 더 높은 수준이다.
잠실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아직 대책이 발표된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아 시장에 큰 영향은 없다"면서도 "다만 최근 집값이 계속 오른 것은 전세로 거주할 실수요자들이 매매로 옮겨간 영향이 큰데 (대출 규제로) 매매가 더뎌지면 전세로 수요가 옮겨올 가능성이 높다. 하반기엔 더 오르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지난 27일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고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고강도의 대출 규제를 내놨다. 규제에 따르면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원천 차단하고 무주택자 대출 한도도 최대 6억원으로 묶었다. 집을 사고 6개월 내 전입신고를 의무화해 실거주가 아닌 부동산 매수는 어려워졌다. 생애 최초 주택구입 주담대 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강화해 대출액을 줄이고 수도권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현행 90%에서 80%로 낮췄다. 조건부 전세대출도 금지됐다. 시장에서 전·월세 물건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 대출 금지로 매수 수요가 전세 수요로 넘어와 임대차 시장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전세 수급 불균형으로 역전세 해소 속도가 느려지는 등 시장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서울이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점도 전셋값을 밀어 올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서울에 예정된 입주 물량은 2만2099가구다. 상반기 2만4639가구보다 더 줄었다. 내년엔 2만8355가구로 올해(4만6738가구)의 절반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2027년엔 8803가구로 더 줄어든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 랩장은 "전월세 가격은 현재 상승 전망이 우세한데 입주 물량 감소는 상승 폭을 키우는 핵심 요소가 된다"며 "공급 축소가 가격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셋값이 오르면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날 기준 1∼6월 서울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월세 계약은 29만158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2만8656건)보다 21.58% 늘었다. 같은 기간 전세의 경우 15만3113건에서 16만3019건으로 6.64% 증가했다. 월세가 전세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난 것이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2025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시장 진단 및 내수경기 활성화 전략 세미나'에서 "월세화 흐름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라며 "전세나 월세는 실제 수요가 하방을 지지해 한 번 오른 가격은 하락이 어렵다. 최근 월세 상승 폭이 확대되며 체감 월세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전세 매물은 감소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 전세 매물은 2만4389건으로 올해 초 3만1814건보다 7425건(23.33%) 줄어들었다. 대출 규제가 나왔던 지난달 27일 2만4855건과 비교해도 5일 만에 496건(1.99%) 감소했다.
가격은 오름세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23일) 기준 서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9% 상승해 전주(0.07%)보다 상승 폭을 키웠다. 서울 전셋값은 지난 1월 첫째 주 0.01% 하락을 기록하긴 했지만 이를 제외하곤 2023년 5월 넷째 주(22일) 이후 109주 동안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