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재건축 단지에 억대 부담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일선 재건축 조합들 사이에선 막대한 부담금으로 인해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유명무실하던 재초환…수억원 부담금으로 돌아오나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는 재건축 사업을 통해 조합원이 얻은 이익이 8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분의 최대 50%까지 국가가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입니다. 이달 기준으로 전국에서 58개 단지가 부담금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규모가 조합원 1인당 평균 1억328만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재건축 전과 후 주택 가격 상승분을 따지기에 서울에 있는 여러 단지에는 더 많은 부담금이 부과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토부가 공개한 시뮬레이션에서 서울 29개 단지가 부담금을 내야 할 것으로 계산됐는데, 1인당 부과액은 전국 평균보다 많은 1억4741만원이었습니다. 강남권 단지 부담금 예상액은 3억9000만원에 달했습니다.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부담금을 내야 할 처지가 되자 각 조합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나 재초환은 그간 부담금이 부과된 적 없는 유명무실한 규제였기에 더 반발이 큽니다.
재초환은 투기 방지와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시행이 유예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했는데, 직전 윤석열 정부에서 폐지를 추진해 지자체들도 그간 부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새 정부는 재초환을 시행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재건축을 통해 과도한 이익을 누리는 것은 사회 공공을 위해 환원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재건축했다고 그 이익을 과도하게 누리는 것은 공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초환을) 시행해본 뒤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정비업계에서는 이르면 연내 부담금 부과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미 준공을 한 서초구 반포동 '센트레빌아스테리움', 방배동 '방배센트레빌인더포레',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이편한세상문정' 등이 우선 부과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면 누가 재건축하겠나"…거세지는 반발
재건축 조합에서는 반발이 이어집니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이중과세라는 지적과 1가구 1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더해 향후 도심 주택 공급에 큰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공사비가 계속 올라 조합원들이 예상보다 많은 분담금을 내며 어렵게 재건축했는데, 수억원에 달하는 부담금을 어떻게 내겠느냐"며 "대출이 나오면 다행이고, 그나마도 안 되면 집을 팔고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계속 살던 동네에서 편히 지내려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꾸는 것인데, 그걸 이유로 살던 동네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보면 누가 재건축하겠느냐"고 강조했습니다.
다른 재건축 조합 관계자도 "재건축하면 가치가 오른다고 하지만, 조합원에게 현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갑자기 수억원을 내라고 하면 무슨 돈이 있어 내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집을 내 돈 들여 새로 짓는데 토지도 내놓고 임대주택도 내놔야 한다"며 "거기에 분담금까지 추가로 내라는 것은 발상부터가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국 70여 개 재건축 조합이 모인 전국재건축정비사업조합연대(전재연)는 국토부에 재건축 부담금 부과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제출했습니다. 재건축 부담금 산정의 기준은 한국부동산원의 통계인데,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부담금을 산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앞서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102차례에 걸쳐 집값 상승률을 낮추고자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조작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재건축 이전 집값이 실제보다 낮게 산정됐다면 초과이익도 실제보다 부풀려지게 됩니다.
정비업계에서는 주택 공급절벽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재초환으로 인해 향후 도심 주택 공급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도심 내에서 주택을 공급할 방법은 사실상 재건축·재개발뿐인데, 재건축 부담금 부과를 고수하면 향후 재건축이 크게 위축되리라는 것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분양된 아파트 단지 38곳 중 76.3%에 해당하는 29곳은 정비사업장이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재초환은 재건축을 막기 위해 도입된 법"이라며 "재초환이 작동하면 주택 공급 부족에 따른 시장 과열과 집값 폭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주택 공급 확대를 통한 시장 안정이라는 현 정부 기조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