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달서구 상인동 ‘상인 푸르지오 센터파크’ 정문에는 30일 차량은커녕 행인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주차장은 플라스틱 블록으로 막혀 있고 1층 상가는 모두 공실이었다. 전체 990가구가 작년 4월 준공 이후 1년 넘게 텅 비어 있다.
대구, 경북 등 지방을 중심으로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계속 쌓이고 있다. 수도권은 주택 공급 부족으로 집값 상승 우려가 많지만 지방에서는 미분양 주택 누적으로 시장의 불안이 크다.
국토교통부가 이날 발표한 ‘4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지난달 말 기준 6만7793가구였다. 신규 공급 축소 영향으로 지난 3월보다 1.6% 감소했다.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6422가구로 3월보다 5.2% 증가했다. 2013년 8월(2만6453가구) 후 11년8개월 만의 최대다.
전체 악성 미분양의 80%인 2만1897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대구가 3776가구로 가장 많고, 경북(3308가구) 경남(3176가구) 부산(2462가구)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 4월까지 인허가, 착공, 준공 등 ‘3대 공급 지표’도 모두 부진했다. 주택 인허가는 지난달까지 9만14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2% 줄었다. 착공과 준공은 각각 33.8%, 9.8% 감소한 5만9065가구와 13만9139가구에 그쳤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장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3000가구 매입과 기업구조조정(CR) 리츠 도입만으로는 지방 미분양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며 “단기 등록임대사업에 지방 아파트를 포함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꺼진 새집' 2.6만가구…대구선 분양단지 절반이 '눈물의 세일'
전국 곳곳 미분양 '곡소리', 건설사 대규모 할인 나섰지만…

“건물이 완공되고 할인 분양한 지도 한참 됐어요. 저녁에 산책하다 보면 아파트 전체가 불이 꺼져 있어 을씨년스럽죠.”(대구 달서구 도원동에 사는 신애리 씨)
대구에서는 1년 이상 불이 들어오지 않은 아파트 단지가 한둘이 아니다. 지역 주민이 “동네 흉물이어서 누구든 빨리 입주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다. 대구에선 전체 분양 단지의 절반인 30여 개 단지가 할인 분양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30%가량 할인해 50~100가구를 팔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면서 전국 곳곳에서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설사들의 대규모 할인에도 미분양이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중도금, 잔금 등을 제때 못 받은 중소 건설사·시행사의 연쇄 부도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지방에 불 꺼진 단지 수두룩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대구의 악성 미분양 아파트는 3776가구로, 전국에서 악성 미분양 물량이 가장 많다. ‘미분양의 무덤’으로 불리는 대구 지역은 한때 미분양 물량이 1만3000가구(2023년 2월 1만3987가구)를 넘어섰지만 공급이 멈춰 서며 작년 말 기준 8807가구까지 줄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9065가구까지 늘어 1만 가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중 30%가량이 악성 미분양 아파트다.
다른 지방 도시도 미분양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건 마찬가지다. 경북(3026가구→3308가구) 경남(3026가구→3176가구) 부산(2438가구→2462가구) 등이 모두 한 달 새 악성 미분양이 크게 늘었다.
광주의 핵심 입지 아파트 역시 예외가 아니다. 광주 서구 상무센트럴자이는 지난달 30일 입주를 시작했지만 아파트 주변에서 이삿짐 차량을 구경하기 쉽지 않다. 아파트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제대로 완판됐다면 하루에 탑차 10대 이상이 오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규모가 903가구인 이 단지는 신도심인 상무지구와 1㎞ 이내로 가까운 데다 대로변에 도시철도 1호선이 지나 분양 전엔 도심의 마지막 ‘노른자 땅’으로 불렸다. 하지만 업계 추산 분양률이 60~65%에 불과하다.
◇눈물의 할인 분양… “그래도 안 산다”
미분양이 계속 쌓이다 보니 지방에선 대대적인 할인 분양이 잇따르고 있다. 대구 동구 ‘안심호반써밋 이스텔라’는 준공 후에도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지 않자 분양가의 85%를 5년 뒤 납부하는 잔금 유예 5년 또는 선납 할인 7000만~9300만원이라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수성구 ‘빌리브 헤리티지’는 분양가보다 4억원 싸게 내놓아 법정 소송까지 번졌다.
대구 달서구 A공인 관계자는 “5년 전 분양한 전용면적 84㎡ 아파트 시세가 4억원대인데 분양가가 6억원을 넘었으니 계약이 될 리 만무하다”며 “공사가 시작된 2021년 인근 아파트 호가가 5억원대 후반까지 올라갔지만 분양가 상승을 기대하고 후분양을 택한 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부동산 시장을 옭아매고 있다”고 분석했다.
광주시청이 500m 거리에 있어 입지 여건이 좋다고 평가받은 상무퍼스티넘스위첸(226가구)은 미분양으로 할인 및 임대 전환에 들어갔다. 후분양한 이 아파트는 7000만원 특별 할인과 함께 일부 가구를 4년 전세 임대로 돌렸다. 분양권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광주에선 전용 84㎡ 이상 중대형 가구 위주로 분양권이 당초 분양가보다 싼 마이너스 프리미엄 단지가 적지 않다. 전용 84㎡는 분양권이 8000만원, 150㎡는 1억5000만원까지 내린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광주 지역 주택업계 관계자는 “미분양 물량이 계속 쌓여 분양가격이 더 하락할 것을 기대하는 수요자가 쉽게 매매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새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 전까지는 미분양 물량이 늘어만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심은지/대구=오경묵 기자/광주=임동률 기자 summit@hankyung.com